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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당 임성 대종사는 1975년 봉은사 주지로 취임해 주요 전각을 중창하는 등 봉은사의 기틀을 닦았다.

영암 스님은 1967년과 1975년 조계종 총무원장, 1979년 동국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1975년엔 봉은사 주지로 취임해 당시 개발 붐으로 인해 망실 위기에 처해있던 도량과 토지 등 불교 재산을 되찾고 가람을 정비하는 등 현재의 봉은사 도량을 일구는 기틀을 세웠다

 

 

봉은사 부도탑

 

<부도(浮屠)/탑비(塔碑)/공덕비(功德碑)>

  진여문에 들어서서 오른쪽을 보면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모양의 부도와

 비석이 도열되어 있습니다.

부도는 모두 2기인데 팔각원당형 부도는 중앙종회의장, 총무원장, 동국학원

이사장, 원로회의 의장 등을 두루 역임하신 영암당 임성대종사의 것이고,

석종형 부도는 한강홍수 때 많은 사람을 구했던 청호당 학밀 화상의 것입니다.

부도 쪽으로 탑비 2기가 나란히 서있는데 부도 옆에 있는 것은  영암 대종사의

비이고, 그 옆에 잇는 탑비는 1932년에 세워진 봉은사 사적비 입니다.

그리고 부도 남쪽으로 모두 16기의 비가 있는데 대부분 공덕비입니다.

 맨 끝에 1987년에 세운 체신부장관(1968), 보건사회부장관(1969)을 역임한

 대덕공주 춘곡 김태동 선생 송덕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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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당 임성대종사는(1907~1987) 높은 수행력과 탁월한 행정력으로

한국불교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신 분 중에 한분이시다.

15세때 통도사로 출가하여 구하 천보스님으로부터 사미계를 받았으며

1933년 월정사 한암스님으로부터 비구계와 보살계를 받으셨다.

전국 주요사찰의 주지를 역임하고 동국역경원장, 총무원장, 중앙종회의원등

조계종 요직을 두루 거치며 높은 원력을 성취하셨으며 두 번에 걸쳐 봉은사

주지를 역임하셨다.

1975년 봉은사 주지를 맡을 당시 도시개발의 붐이 일면서 봉은사 땅의 대부분

을 잃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을 때 각고의 노력으로 잃었던 토지와

삼보정재를 되찾았으며 오늘날 봉은사 가람을 재건. 수호하게 되었다.

영암스님의 성품은 올곧고 엄격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계율을 엄격히

지키고 공과 사가 철저하였으며 난관과 위기에는 늘 앞장서 해결해 오셨다.

스님은 늘 주머니가 둘 달린 옷을 입고 다니셨다.

오른쪽 주머니에는 공금을, 왼쪽 주머니에는 개인 돈을 넣고 다니면서

쓸 때마다 그 구별이 철저하셨다. 사비가 떨어져도 절대 공금을 쓰지 않고

대관령을 넘어 오대산까지 걸어간 일화는 후학들에게 깊은 감명을 남기셨다.

영암 큰 스님은 그의 많은 공적을 인정받아 1984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으며 1987년 6월 3일 (음력 5월 7일) 봉은사에서 입적하셨다.

봉은사 부도탑에 그의 사리를 모시고 비를 세웠으니 영암스님은

오늘도 봉은사 가람을 수호하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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